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문단 편집) === [[베니그노 아키노]] 암살 사건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noy2.jpg]] || || [[베니그노 아키노|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2세]](Benigno Simeon "Ninoy" Aquino Jr. 1932 ~ 1983). || 그는 마르코스에게 맞서 대항했던 정치가로, [[1983년]] [[8월 21일]], 마르코스 정권에 대항하다가 귀국길에 [[암살]]당했다. 마르코스는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에게 '''국가 반역 혐의'''로 사형선고를 내렸다가, [[미국]]이 개입하자 사면해서 미국에 망명을 보냈다. 항상 그렇듯 미국의 목적은 마르코스에 대한 견제 목적이었다. 망명지에서 아키노는 돌아왔지만, 니노이가 항공기에서 내리자마자 롤란도 가르만이라는 자가 뒤쪽에서 튀어나와 니노이를 암살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5fSWyC7kbY|암살장면]] "우리 조국은 암살을 서비스처럼 주는 나라"라면서 죽음을 암시하긴 했으니, 어쩌면 죽음을 이미 각오했을지도 모른다. 아키노 암살 사건이 터지자 그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 마르코스가 사건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독립위원회를 만들고 조사하게 했는데, 독립위원회는 이듬해 "군의 고급장교들이 암살에 연루되었다"고 최종 결론을 발표했다. 마르코스 정부는 청부 살인업자인 롤란드 갈만을 진범으로 지목했지만 마르코스 정권 최고수뇌부에 의해 주도된 정치적 암살이었다는 견해가 필리핀과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필리핀]] 야당은 아키노를 태운 여객기가 공항에 도착한 뒤 아키노를 호위하려고 비행기에 올라탄 보안요원들이 아키노를 살해하는 현장을 직접 본 목격자의 증언을 발표했다. 현재는 마르코스가 이때 투석 중이었음을 근거로 측근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때 마르코스의 통제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키노 암살은 마르코스 정권이 전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필리핀]] 전역에서는 연일 마르코스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집회와 시위가 열렸다. 아키노의 장례식엔 수많은 민중들이 모여 독재자 마르코스를 규탄했고, 거리에는 아키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물결이 일었다. 그리고 베니그노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는, 아키노가 암살당하자 남편의 뜻을 잇기 위해 반정부 지도자로 나서 민중들을 이끌게 되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유명했는가 하면, 아키노가 암살당한 공항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으로 이름까지 바꾸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